November

하늘은 온통 잿빛이다

겨울은 항상 하늘길로 온다

94세의 할머니는 70 가까운 아들이 미는 훨체어에 앉아 오셨다

그 뒤를 따라 들어오는 여자는 며느리인지 딸인지

가끔씩 어머니를 조용히 부르곤 했다

그동안 요양원에 잘 계셨었는데,

패드에 핏덩이가 묻어나 대형병원으로 갈까 했는데

추운 날씨에 멀리 가는 것도 기다리게 하는 것도 고생이 될까봐

모시고 왔다고 그 여자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들은 순한 아이를 안듯

노모를 힘들이지 않고 내진대에 올려주었다

패드를 내리자 각혈처럼 핏덩이가 쏟아져 있었다

그 연세에 부인과적으로 그렇게 많은 출혈이 있을 수 있을까

자그마한 질경을 넣어 확인해봐도 부인과 출혈은 아니다

질식초음파검사가 그런 확신을 더해주었다

직원이 소변줄을 가지러 간 사이에

나이든 아들은 자꾸 미안해했다

나이드신 분들이 잘 오지 않을 산부인과에 와서

나와 직원들을 힘들게 한 것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요즘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가끔씩 오시고

어머님은 부인과 진찰시 불편하실텐데도 아주 협조를 잘하시니 미안해하지 마시라 했다

노모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언어를 잊어버린 사람처럼 고요했다

소변줄을 삽입하자 진한 혈뇨가 컵 하나를 가득 채워도

노모는 마치 모든 감각을 잃어버린듯 미동도 없었다

옷을 입히고 휠체어를 밀고 나가는 것은

들어올 때와 정확히 역순으로 진행되었다

진료의뢰서를 나이든 아들에게 쥐어주며

내가 확진할 수 없는 진단명을 말해버렸다

며느리인지 딸인지 모르는 여자는

궁금한 것이 많은 듯 질문을 하려했지만

아들은 제지했다

노모는 이미 천상의 세계에 가 있는 듯 표정에 아무런 변화가 없고

지상의 대화 따위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단지,

나와 딸인지 며느리인지 모르는 그 여자만이

시덥지 않은 언어로 소란을 피우고

나는 대학병원에 전화해서 빠른 예약을 부탁했다

그들이 나간 자리에

잠시 고독이 호수처럼 내려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