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만에 내원한 55세 환자는
남편의 팔을 붙잡고 진료실에 들어섰다
신혼 때부터 임신과 분만으로 자주 봐서
친숙한 얼굴
무슨 일이 있었어요?
거동이 불편한 그녀에게 물었다
뇌경색이 왔어요
그 후유증으로 몸 한쪽이 불편해요
그러기에는 많지 않은 나이,
그러나 표정은 평화로웠다
집에 있다가 전조 증상이 있어
가까운 병원에서 MRI를 촬영했는데
별 이상이 없어 귀가했고
며칠 후 가족들이 더 큰 종합병원으로
가보라 해서
대형 병원에 입원 중에 순식간에 사단이 났어요
안타깝고 아쉬운
그리고 그 흔적이 너무 깊은 모습에
뭐라 위로와 용기를 드릴 수가 없었다
열심히 운동해서 이겨내셔야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너무 빈한했고
문득,
안받의 내 몸을 걱정하는 이상한 상황이 됐다
모든 것이 느린 환자의 진찰에서
내가 배려할 수 있는 것은
천천히 옷을 벗고 천천히 옷을 입고
신발도 천천히 신으라는 것뿐이었다
대수롭지 않은 부위라 질환을 설명했고
남편은 그녀를 데리고 나갔다
내 아버지도 그랬다
두 번째 발병으로 누워만 계셨다
예과 2학년1학기 기말고사를 보다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시험장을 박차고 나가
집으로 뛰어갔던 울컥했던 일이 생각나
잠시 진료를 멈췄다
아버지도 젓갈을 좋아하셨고
나도 갈치 속젓을 좋아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의 자전거를 따라
논둑길로 자전거를 타고 가
금소 시장에 김장용 젓갈을 푸짐히 싣고 오던
귀갓길은 너무 어두웠다
멀리 보이는 호롱불이 켜진 마을은
우주처럼 멀었고
마지막 십 리를 남긴 삼거리 주막 불빛은
반가웠다
가야할 우리집은 너무 멀고
길은 포장되지 않은 자갈길
더는 파달을 밟을 수 없어 몇번을 주저 앉으면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던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전거를 밀고
한 손으로는 내 등을 밀어주던 밤
너무 늦은 시간에
간신히 집에 도착했고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나는 곧바로 쓰러져 죽은듯이 잠이 들던
유년의 그때가 불현듯 생각났다
내가 좋아하는 젓갈을 선물 받으면
나는 냉장고 깊숙히 숨겨 놓고
아내는 순식간에 찾아내 다대버린다
뇌경색 환자는 나갔고
새로운 환자를 호명하면서
의사인 내가
언제 환자가 되어 진료 대기실에 앉아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까
불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