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일기 43

오후 진료 시간에 스물세 살의 여자는
피임을 상담하러 왔고 성경험이 한 번도 없다는 예진표가 눈에 띄었다

생리 시작일을 확인해 보니
곧 배란일이고 임신이 가능한 기간이었다

인제쯤 이벤트가 있을 것 같으세요?

그렇게 묻는 내가 좀 경솔했고 야릇하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곧 있을 것 같아요

성적 데뷔라는 게 어떤 경기 일정처럼 미리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
천둥 번개처럼 느닷없는 일인 것을 알고 있지만

임신을 피하고자 하는 젊은 여성에게 확실한 피임방법을 조언해야 하는 나로서는
‘곧 있을 것 같다’는 그 말이 시원치 않으면서도
사랑의 속성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피임약이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한데
이번 달은 피임약을 복용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콘돔을 사용하거나 실패 확률이 높은 질외사정
방법이 있지만

서투른 첫 경험에서 얼마나 허둥댈까
저으기 걱정된다 말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첫 경험의 설렘과 임신에 대한 걱정이
미묘하게 교차하고 있었다

잠깐 스쳐가는 그녀의 예쁜 미소에서
사랑이 충분히 여물었음을
그 응축된 사랑이 드디어 폭발하는
절정에 이르렀음을 눈치챘다

‘곧 있을 것 같'다는 그 날이 다음 생리주기이길 바라면서 피임약을 처방해주었다

아무 두려움 없이 행복하고 황홀한 사랑의
데뷔가 되길 마음 속으로 바랬다

창밖의 백목련 나무를 바라보자
봄 햇살이 살짝 건드리면 금방 터질 것 같은
꽃몽우리가 잔뜩 긴장하고 매달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