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일기 38

40대 초반의 환자는

질 입구의 어느 한 곳을 집요하게 가리키며

가렵다고 했다

 

병록지를 리뷰해보니

같은 증상으로 우리병원 다른 과장에게

여러 번 진료를 받았었다

 

호전이 없자, 내 진료실을 찾은 모양이다

 

무영등 초점을 정확히 맞추고

안경을 치켜들고 집중해서 시진視診했다

 

특이한 점이 없었다

 

잘못 봤나 다시 가려운 곳을 짚어보게 했으나

결론은 같았다

 

옷을 입고 의자에 앉은 환자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제 딸 아이도

같은 증상으로 하루에 팬티를

아홉 번 정도 갈아입어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제가 산부인과 의사 생활을 사십 년

가까이했습니다

초등학생에게 하루에 그렇게 여러 번 팬티를

갈아 입힌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습니다

 

그리고 환자분께서 가렵다고 콕 찍어 가르켰던

부위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설령 제가 오진을 했다고 해도

절대 ‘죽을병’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시하고 사는 겁니다

큰일이 아닌 것들이 얼마나 많아요

살면서 사소한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딸 아이에게도 그 부분에 관해서 묻지도 말고

아이가 불편하다고 해도 못 들은 척 무심하세요

무슨 큰일이 일어나진 않으니까요

 

환자는 겸연쩍은지 야릇한 미소를 띠고

진료실을 나갔다

 

금쪽처럼 귀한 딸아이를

문제가 있는 금쪽이로 만드는 그 엄마를

오은영 박사님께 보낼 걸 그랬나

혼자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