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일기 35

산부인과 의사여서

남자 환자를 볼 일이 거의 없다

 

인턴 시절 응급실에서

술 취한 남자들의 난동을 자주 목격하며

남자가 아닌 여자를 치료하는

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밀려 올 때

몰려 오는 백신 접종을 해결하기 위해

산부인과 진료를 잠시 다른 과장들에게 맡기고

예방접종에 매달린 적이 있었다

 

그 후로 늦가을이 되면

어르신 독감과 코로나 예방접종해야 할 분들이,

내시경 검사로 바쁜 내과 진료실 대신

내 진료실로 들어온다

 

모처럼 맞이한 남자 환자들의 진료가

의외로 즐겁다

찡찡거리지도 않고

단답식 대화로 진료가 한결 수월하다

진료가 끝나면 나가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건장한 80대 후반의 남자가 진료실에 들어섰다

언뜻 보기에 팔 척 장수의 모습이다

그러나 무릎 관절 어딘가가 고장난듯 지팡이를

짚고 서있는 것이 큰 전쟁을 치른 부상당한 장수 같다

 

원장님, 제가 코로나 때부터 매년 원장님께 예방접종을 했어요

언제 죽을 지 모르지만 죽을 때까지 이 병원에

와서 예방접종을 할께요

 

목소리라 우렁차고 기개가 남다르다

 

감사합니다

건강히 오래오래 사셔야지요

 

내 인사에 화답하듯 뒤돌아서서 목례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