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일기 24

진료실 문틈으로 접수대에서 들려오는

저 거렁거렁한 목소리는

테토녀의 것이다

 

진료 모니터에는 주의해야 할 환자 표식이

여러 개 더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절대, 책 잡힐 말을 해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감동 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소용없는 짓이다

최대한 빨리 진료해서 문안하게 병원문을 나서게 하는 것이

나와 직원들이 해야 할 최선의 목표다

 

60대 후반의 테토녀는 우람한 체구로 진료실에 들어왔다

의자에 앉자마자

 

원장님 얼굴이 많이 상했네요

 

예기치 못한 어퍼컷을 한 대 맞은 것처럼

순간 어지러웠다

 

당신은 얼굴이 많이 상했을 뿐더라

몸도 질펀하게 퍼졌군요

 

입 밖으로 나오려는 말을 꿀꺽 삼키며

 

며칠 전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고 염색해서

그나마 이정도 상하게 보이는 거에요

저도 나이가 많아 많이 상했을 겁니다

 

빨리 본격적인 진료에 들어가기 위해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는지 물으려는

나보다 한발 앞서

 

원장님이 시흥시장 후보로 선거에 출마하셨을 때

제가 엄청나게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었어요

 

언제적 이야긴가

 

그때는 원장님이 아주 예뻤었는데…

 

그나마 그래도 듣기 좋은 이야기 하나는 하시는군

속으로 생각하며

 

감사합니다.

감사했습니다.

 

진료를 위해서 병원에 오셨는지

아니면 수다를 떨기 위해서 오셨는지

아무런 진척이 없다

 

눈으로 상대방을 쳐다보고

정제할 여유도 의도도 없이 그냥 그대로 말을 쏟아내는,

그걸 듣는 사랆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않는 것이

무례인지 솔직함인지는모르겠지만

 

내 감정이 흔들리거나 흔들리지 않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다

 

개그 콘써트 한편을 짜듯

순발력 있게 농담을 주고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대체

오늘 진료한 그 분은 어떤 불편함으로 오셨는지

진단명이 무엇이고 어떤 치료를 했는지 조차

기억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