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세 번째 환자는
72세로 새치가 진눈깨비처럼 섞인
강건해 보이는 분이시다
새로운 차트 번호가 주어졌으니
당연 초진 환자다
아니면 너무 오랜만에 오신 분이시거나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원장님은 그대로세요
신천 삼거리에 최산부인과(1991년 내가 처음 개원했던)에서
제가 유산돼서 찾아뵈었을 때랑
아! 30년 전이네요
아니에요
30년이 훨씬 지났어요
원장님은 늙지 않는 방부제를 지니고 계신가봐요
‘늙지 않는 방부제’
이런 표현을 그 나이에 쓰는 분이면
예사롭지 않다
아침부터 저를 행복하게 해주시네요
오늘 하루가 무척 즐거울 같은 예감이 들어요
그렇다고
모든 환자들이 나를 칭찬하는 것은 아니다
밤새 아프다 이른 아침에 내원한 환자에게
상냥함까지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픔과 병을 온통 내가 만든 것처럼
온갖 짜증과 불평으로
나를 흔들어 놓고 가는 경우도 많다
물론, 얼마나 아프시면 저럴까
이해하지만 아무런 잘못도 없는 직원들에까지
갑질을 해대는 막무가내를 보면
병원에 와서도 저러는데 다른 곳에 가서는 얼마나 할까
걱정하면서 차트 한 구석에
‘조심해야 할 분’으로 표시를 해둔다
이 표시는
이분의 말로 나와 직원들의 행복이
다치지 않기의 표식이기도 하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원장님은 글을 쓰셨고
그 당시에 쓰신 책을 지금도 제가 가지고 있어요
아마 그 시기에 펴낸 내 첫 수필집이었을 것이다
원장님은 지역 사회에 좋은 일도 많이 하셨던 것도
기억해요
내 희미해진 과거를 복기해주었다
환자분은 자궁하수가 있고 수술을 해야 할 정도여서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기로 했다
제 딸아이도 이 병원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병실을 폐쇄하셨다 들었습니다
원장님은 패션 안경을 쓰셔서인지
정말 옛날 그대로세요
며칠전 흰 머리를 염색했고
자신없는 부위를 안경으로 가려서 일거예요
칭찬을 해주시니 자신감이 생기네요
과도한 칭찬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허황된 찬사는 아니어서^^
저는 오늘 아침 많이 행복하네요
이 기분 진료 끝날 때까지 가지고 갈께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