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일기 16

원장님,

박○길님 보호자분께서 찾아오셨어요  

 

들어오시게 하세요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는데  

박○길 환자 접수가 되어있지 않았다  

매번 어머니의 소변컵을 들고 귀찮을 정도로 나타나던  

아들  

 

문이 열렸고

아들의 손에는 케익이 들려 있었다  

 

어머님은 어떠세요?

 

순간,  

예순이 넘은 아들은 오열하듯 울었다  

 

돌아가셨군요

 

서럽게 아주 서럽게 울뿐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절대 눈물을 보이지 않는  

나도 덩달아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세찬 장맛비가 진료실 창문을 요란하게 두드릴뿐  

진료실에는 깊은 침묵이 흘렀다

 

어머님께서 돌아가시면서  

원장님처럼 고마웠던 분들에게  

케익을 잊지말고 선물하라고 말씀하셨어요  

 

어머님이 돌아가신지가 벌써 한 달이 지나갔지만  

저는 그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다음 주가 어머님 생신이어서  

그전에 꼭 원장님을 찾아뵈어야겠다 생각했어요  

 

어머님이 초코 케익을 좋아하셔서  

그 케익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어머님께서 저에게 보낸 선물이군요  

 

일어나 두 손으로 정중히 받았다  

 

자주 방광염이 걸리셨고 눈에 띄게 가벼워지면서  

걸음이 불편해지며

나는 아들에게 어머님을 병원에 모시고 오지 않아도 된다  

소변컵에 소변을 받아오게 하거나  

스마트폰으로 불편한 부위를 사진 찍어 가져오게 했다  

 

지극정성 어머님을 모시는 아들은  

아주 사소한 증상으로도 자주 찾아왔고  

어느 때는 짜증이 날 정도로 나를 귀찮게 했다  

 

소멸을 향해 가는 93세 노모를24시간 모시는  

아들의 효심으로 이해했지만

 

어머님은 아마 행복하셨을 겁니다  

자기 집에서 효자 아들의 정성스런 보살핌을 받으시면서  

임종하셨으니

 

아들은 또 눈물을 흘렸다

저도 의사생활을 오래 했지만
보호자 분처럼 어머님을
그렇게 정성을 다해 모시는 아들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들아, 지금까지 많이 고마웠다
이제는 아비와 남편 자리로 돌아가거라


어머님이 돌아가시면서 제 손을 잡고 말씀하셨어요

 

그동안 묻지 못하고 궁금한게 많았어요
저는 아드님이 결혼하지 않고 어머님과 둘이서 사시는 줄 알았어요
딸처럼 어머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여 저에게 보고하셔서요

 

코로나 팬데믹이 오면서 연로한 어머님을 지키기 위해
본인 아니게 어머니 집에 혼자 들어가 살게 되었고
감염을 차단하기 위해 하던 무역업도 그만두었지요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온전히 어머님과 함께 보낸 지난 7년의 세월이
저에게는 너무 소중했어요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미국에 사는 누님댁의 마지막으로 다녀오시더니
미국 할머니들처럼 어머니도 혼자 살고 싶다고
큰 형님집에서 나오셔서 아버지가 남겨주신 집에서
잃어버린 살림살이를 찾으면서 참 행복해 하셨어요

돌아가신 분의 선한 모습이 떠올랐다
가족 모두들 후광처럼 비추는…

 

모처럼 어머니 집에 갔어요

매번 어머니 침대 아래 방바닥에서 잤는데

어제는 처음으로 어머니 침대에서 누워

너무 깊고 편안한 잠을 잤어요

 

아들은 평온을 되찾은 듯 미소띤 얼굴로 일어섰다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어머님이 고마워하셨고

그보다 더 어떻게 효도를 할 수 있겠어요

 

우리는 7년 동안 한번도 잡아보지 못한

서로의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했다

 

박0길 님을 볼 수 없듯이

효자 아들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