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일기 12

원장님,

원장님을 뵙겠다고 제주도에서 가족 세 명이 오셨어요

 

누구지? 아무 연락도 없었는데,

들어오시게 하세요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선 부부를 보자마자

단박에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33년 전쯤 산전진찰 때마다 동행했던 남편,

(그 당시에는 그런 남편은 거의 없었다)

아내가 예뻐서 였을까?

 

원장님께서 그때 저에게 간첩이 아니냐고 물었어요

 

그랬을 것이다

직장에 다녔거나 무슨 사업을 했다면 부인이 내원 때마다

같이 올 수 없었을 것이고

 

무슨 일을 하는지 물었을 때 명확히 대답해주지 않아

내가 농담삼아 그렇게 말했었을 것이다

 

지금은 사업차 제주도로 이사갔고

곧 있을 딸아이 결혼식 때문에 인사차 들렀다고 했다

 

딸 아이도 엄마를 닮아 예뻤다

 

넓은 대기실로 나가

가족 세 명 사이에서 흐믓한 사진촬영을 했다

 

며칠 후 일요일

청첩장을 들고 부천에 있는 결혼식장에 갔다

 

내가 받았던 신부 옆에 앉아

행복하고 아름다운 장면을 촬영했다

 

신부 아버지는 내게 다가와

실은 원장님께 주례를 부탁하고 싶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주례 없는 결혼식을 선호하잖아요

 

난처한듯 말을 이어갔다

 

저는 모범되게 살지 않아서 절대 결혼식 주례를 서지 않아요

잘하셨어요

 

대신 저에게 축시를 부탁하시지 그랬어요^^

 

아차,

제가 미처 그 생각을 못했네요

 

신부를 받아준 산부인과 의사 시인으로

원장님을 내빈께 소개하고

딸 아이 결혼을 축하하는 시 한편을 부탁하고

원장님께서 직접 낭송까지 해주시면

정말 뜻깊었을 텐데요

 

신부 아빠는 몹시 아쉬워했다

 

신부 엄마는 멋진 신랑에게

신부를 받아 준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신랑은 신기한듯 생각하다

행복하게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