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벅머리 반송盤松 앞에 선다
어느 가지부터 잘아야 할까
가위 든 손 자꾸 머뭇거린다
당연,
죽은 가지부터 잘라야지
의미없이 존재하는 것들
소멸되지 않고 박제된 채 남아있는
낚은 생각 버려야지
밑으로 쳐진 가지
중력 견디지 못한 우울도
함께 쳐내야지
밖으로 뻗어가지 못하고
자꾸 안으로 파고드는 어린 싹들
소심한 생각도 정리한다
웃자란 가지 싹둑 자르면
널뛰던 생각도 잠시 숨 고른다
수피처럼 각진 생각들 손으로 쓸어내면
드러나는 황금빛 줄기
견고한 옹이
불통의 고집일랑 버려야지
잘라내야 만들어지는 햇빛과 바람의 길
햇볕의 고슬한 통로가 되는
마음의 창을 연다
독야청청 혼자 키 세우는 우둠지 잘라내야
우리가 되지
손끝 서로 닿지 않게 팔 벌리면
아름다운 나무가 되지
씨름하는 가지 솎아 내는
삭발의 시간
간섭하던 번뇌 사라지고 찾아온 평화
성찰을 잠시 멈추면 무성하게 자라는 무명초
부지런히 가위질 한다
앞을 막아서야 멈추는 걸음
직진의 가지 잘라주면 방향을 트는 나무
각을 잡는다는 건
틀을 잡아가는 것
뾰족한 성질들 다듬으면
다복솔이 된다
좌우로 뻗어가는 마음의 줄기
조금씩 각도를 틀어야 중도가 되지
치우치지 않고 흔들리는 나무가 되지
그렇다고 생각의 눈조차 잘라내면 안돼
홀로 힘 받은 가지 잘라내야
유려한 몸매가 되지
예쁘게 층위를 이루는 잎과 생각들
반송의 꽃이 되지
품성은 빛나는 줄기
잠시 물러나
화폭을 보듯 나무를 보면
나무는 정갈해진 내 마음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