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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원
영혼의 행려자들이 머물다가는
이 사원에 들어
한 달포 머물러도 좋으리
남루를 끌고 온 오랜 노독을 풀고
고단한 일상의 구두를 벗어도
좋으리
바람의 거처에 가부좌를 틀고
사무치는 날이면
바람과 달빛이 다녀간 대웅전 기둥에
기대어
바람의 손가락이 남기고 간
지문을 읽듯
뼛속에 새겨진 바루한 생을
더듬어도 좋으리
주춧돌에 핀 연꽃향기가
그리운 밤이면
사자포에서 기어온 어린 게에게
길을 묻고
새벽녘에 흰 고무신 헐렁한
발자국들 따라 숲길에 들어
밤새 숲이 흘린 푸른 피를
마셔도 좋으리
눈발이라도 다녀간 날이면
동백숲 아래서 푸른 하늘 길로
한 생을 떠메고 가는 동박새의
붉은 울음 소리를 들어도 좋으리
새들이 날아간 자리마다
제 그림자를 무릎 밑에 묶어놓고
참선에 든 나무처럼
그대 나무 그늘에 펼쳐놓은
바람의 경전을 눈 시리게
읽어도 좋으리
살아온 세월만큼 법어가 새겨진
그대의 몸은
어느새 바람의 사원이 되리니
바람의 사원에 들어
달마의 이마를 치는 낭랑한
목탁소리를 들어도 좋으리